20130513 넥센 이성열 “야구인생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넥센 히어로즈

넥센 이성열 “야구인생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기사입력 2013-05-13 11:39

5월 13일 현재, 홈런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는 넥센 이성열. 지난 해 7월, 넥센 이적 후 염경엽 감독과 환상적인 궁합을 보이고 있는 그는,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지금의 성적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인터뷰 동안 그가 가장 많이 꺼낸 말이 ‘즐긴다’는 동사였다. 프로 입문 11년차. 강산이 변하고도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는 야구와 새로운 ‘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그한테 야구는 ‘어둠’ 그 자체였다. 자신이 야구선수가 맞는지,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게 옳은 일인지, 경기에 출전도 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월급을 받아도 되는 건지 등등 야구를 못하는 다양한 이유들 속에서 ‘그만두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넥센의 가을 캠프에 합류하면서부터 그의 꼬인 인생이 조금씩 풀리는 듯 했다. 선택받은 자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가을 캠프, 마무리 캠프에 이어 스프링캠프까지 내달리며 그는 감독의 주전 리스트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시즌 초반부터 매서운 화력을 선보이며 넥센 타선의 중심축으로 우뚝 선 이성열(29). 2003년 순천 효천고 졸업 후 포수로 LG유니폼을 입었지만 1군 무대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2008년 두산으로 트레이드 된 후 2010년 홈런 24개를 몰아치며 주목을 받았으면서도 꾸준함이 부족하다는 맹점으로 인해 2011년 홈런 7개의 성적표를 받아든다. 결국 2012년 7월, 넥센으로 트레이드 됐지만 이성열의 부진은 계속됐다. 
그의 은인은 전적으로 염경엽 감독이다. 염 감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여전히 2군과 1군 벤치를 넘나들며 존재감 없는 야구 인생을 영위했을 지도 모른다. 올시즌 비로소 야구인생에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이성열. 지금의 이 순간을 맛보기까지 무려 11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프로 11년의 야구 인생을 돌이켜보면 ‘희로애락’의 결정판인 것 같다. 그런데 기쁜 일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훨씬 많았더라.

“지금처럼 이렇게 편하게 야구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감독님의 두터운 신뢰 속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대우받고 인정받은 적도 없었다. 그래서 2013년 넥센에서 보내는 올시즌이 정말 행복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다.”

-넥센에서 이렇듯 훨훨 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인가.

“너무 뻔한 대답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진심으로 감독님 신뢰 덕분이다. 감독님은 날 가장 먼저 주전 선수로 뽑아놓으셨다. 애리조나 캠프 때부터 말이다. 그게 선수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주전 자리를 놓고 무한 경쟁만 벌였던 스프링캠프가 아닌 일찌감치 주전 선수로 시즌을 준비했던 스프링캠프는 내용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감독님의 안목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고, 내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야구란 놈과 싸웠다. 이전까지만 해도 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조금 노력해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역시’ 하는 생각에 쉽게 포기했다. 아마도 내가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틀려진 부분 또한 올시즌 좋은 성적을 내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이전에 했던 야구를 다 버렸다는 말을 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10년 동안 했던 야구가 별다른 게 없었다. 그걸 안고 있기 보다는 그걸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생각했다. 감독님이 꾸준히 출전 기회를 제공해주셨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가능했다고 본다. 내가 운이 없는 놈은 아닌 것 같다(웃음).”


야구가 안 될 때는 전남 순천에서 소를 키우시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는 말을 장난 삼아 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소 키우는 일은 이성열한테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이성열한테는 '최후의 보루'가 존재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사진=연합뉴스)

-이전에 야구 안 될 때마다 시골에서 소를 키우시는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있는 건가.

“그때는 야구가 안 될 때이고, 지금은 잘 될 때 아닌가.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소는 은퇴 후 나이 먹어서 해도 늦지 않다. 당시엔 그냥 장난처럼 했던 말이 와전돼서 마치 내가 야구 그만두고 소 키우러 가는 것처럼 확대됐더라.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나. 그때는 진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으로 평탄한 야구인생을 살지 못했다. 지금까지 두 차례의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그 중 어떤 트레이드가 더 쇼킹했었나.

“LG에서 두산으로 이적했을 때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LG에서 있는 5년 동안 마음 고생을 너무 했기 때문에 두산에서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싶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2010년 반짝 성적내고선 다시 고꾸라졌다. 그런 상태에서 넥센으로의 트레이드 소식은 진짜 멘탈 붕괴를 뛰어 넘어 멘탈 파괴였다. 1군에서 버티지 못하면 2군으로 내려가는데 넥센의 2군은 강진에 있기 때문에 ‘죽었구나’ 싶었다. 이적 후 지난 여름에 강진에서 2군을 경험한 후 더 열심히 하게 됐다. 강진에 가고 싶지 않아서…(웃음). 그래서인지 선수들이 강진만 갔다 오면 죽기살기로 야구에 매달린다. 당시만 해도 나한테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리란 기대는 하지도 못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웃음).”

-넥센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5월 초반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데, 이전과 달리 넥센의 전력이 굉장히 탄탄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진짜 그렇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우리 팀은 2% 부족한 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프런트부터 감독, 코치, 선수들 모두가 가족애로 똘똘 뭉쳐있다. 우정, 애정, 열정이 우리 팀에 녹아 들어 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상황이다. 넥센의 상승세는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 지켜봐 달라. 내 얘기가 거짓인지 아닌 지를.”

-‘제2의 박병호’란 타이틀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들었다.

“병호랑 나랑은 2년 터울이다. 내가 선배인데, 어떻게 내가 ‘제2의 박병호’가 될 수 있겠나. 지난해 보여줬던 병호의 활약을 내가 재현하고 있다는 부분 때문에 그런 꼬리표가 붙을 수는 있겠지만, 나로선 그런 호칭보다는 이성열로서 평가받고 싶다. 아직은 병호보다 부족한 점이 많다. 이 부분은 감독님도 지적하시는 내용들이고 나 또한 숙제로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좌타자 선수 중 이승엽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게 맞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승엽 선배님은 내 야구의 우상이신 분이다. 난 승엽 선배님이 우리나라 최고의 야구선수라고 생각한다. 그 선배님이 경기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 그 자체이다. 삼성과 경기를 할 때면 선배님이 타석에 들어설 때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다. 많이 닮고 싶은 선배님이시다.”


이승엽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이성열. 만약 이승엽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평소 궁금해 했던 부분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많다고 한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만약 이승엽 선수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겠나.

“시즌 때, 비시즌 때 어떤 스케줄로 생활하시는 지가 궁금하다. 즉 평소의 자기관리를 어떻게 해나가시는지 알고 싶다. 왜냐하면 나 또한 선배님처럼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연봉이 1억 원이 안 된다. 올시즌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박병호의 기록을 깰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박병호는 6,200만원에서 무려 254.8%가 오른 2억2,000만원에 새 연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72를(7200만 원) 받고 있는데, 부상만 없이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1억 대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병호와 같은 상승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병호의 인상폭이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성열을 있게 해준 염경엽 감독. 이성열은 염 감독에 대해 '은인'이상의 감사함을 갖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현재(5월 13일) SK 최정, 그리고 박병호와 함께 홈런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선두 자리가 경기 때마다 순위가 바뀌어지는 형국이다. 홈런왕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것 같은데….

“처음 서너 개 차이로 앞서 나갈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기사들이 자꾸 나오니까 조금씩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나 난 예상을 했었다. 내가 초반에 많이 치고 나가더라도 곧 따라잡힐 거라는 사실을. 워낙 잘 치는 선수들과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탓에 솔직히 지금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더 치고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즐기면서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홈런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기면 나는 물론이고 팀도 힘들어진다. 그냥 생긴 대로 살고 싶다(웃음).”

2011년 두산 시절 스프링캠프에서 이성열은 엉덩이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겪고 힘든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두 달을 재활로만 버티다가 시범경기 막판에 합류했지만, 한 번 떨어진 기량은 좀처럼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 그 경험 이후로 이성열은 선수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도, 훈련도 아닌, 무엇보다 다치지 않고 매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론 동료 선수나 후배들에게 ‘열심히 해라’라는 말보다는 ‘아프지 마라’ ‘다치지 마라’는 말을 주로 하게 된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결혼 계획을 물었더니 이성열은 “야구 잘해서 처자식 먹여 살릴 정도가 되면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란 말로 선을 긋는다. 기사를 마무리하면서 갑자기 드는 생각 하나! 만약 이성열이 ‘처자식 먹여 살릴 정도의’ 연봉을 받아서 결혼하게 된다면 주례를 염경엽 감독에게 부탁해보는 건 어떨까^^.


'열심히 하자'는 말보다 '아프거나 다치지 말자'는 말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다는 이성열. 큰 부상을 당한 이후, 선수한테 가장 중요한 건 몸 관리라는 걸 절감했던 그이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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